국가
바르샤바 공국
Napoleonic client state (1807–1815)
- 이 경계의 기간
- 1807–1815년
- 성립
- 1807년
- 멸망·해체
- 1815년
- 수도
- 바르샤바
- 정치 체제
- 입헌군주제
- 언어
- 폴란드어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이전 나라
- 폴란드-리투아니아
- 다음 나라
- Grand Duchy of Posen폴란드 입헌왕국
개요
바르샤바 공국(폴란드어: Księstwo Warszawskie 크시에스트보 바르샤브스키에[*], 프랑스어: Duché de Varsovie 뒤셰 드 바르소비[*], 독일어: Herzogtum Warschau 헤르조그툼 바르샤우[*])은 1807년부터 1815년까지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 존속했던 국가이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동부 유럽의 보수적인 세 왕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세 차례에 걸쳐 분할되었던(→폴란드 분할) 폴란드를 재건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계획의 결과물로서 탄생하였다.
예나 전투에서의 프로이센의 대패로 체결된 틸지트 조약에 따라 건설된 바르샤바 공국은 1793년, 1795년의 폴란드 분할 때 프로이센으로 귀속되었던 폴란드 중부의 지방으로 이루어졌다. 나폴레옹의 바르샤바 공국의 창설을 선언하고 헌법 제정에 착수할 것을 지시한 날은 1807년 7월 22일이다. 1808년 5월 1일, 공식적으로 나폴레옹 법전의 채택을 선언하면서 대공으로 나폴레옹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이기도 한 작센 왕국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취임했다.
1809년, 오스트리아가 다시 바그람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에 패전하면서 쇤브룬 조약이 체결되자 바르샤바 공국은 오스트리아가 1795년의 분할에서 가져갔던 서갈리치아, 크라쿠프, 루블린 등을 되찾아 더욱 강대해졌다.
바르샤바 대공국이 강대해지면서 러시아는 프랑스의 의도에 대해 중대한 의구심을 갖고 바르샤바 공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폴란드 분할에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했던 러시아는 폴란드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각오는 현실화되었다.
기록 (22)
- 1807년 — Battle of Ostrolenka전투 · France ▸ Prussia, Russia
- 1808년 — Battle of Somosierra전투
- 1808년 — Battle of Tudela전투
- 1808년 — Battle of Espinosa전투
- 1808년 — First Siege of Zaragoza포위전
- 1809년 — Battle of Talavera전투
- 1809년 — Battle of Almonacid전투
- 1809년 — Battle of Ciudad-Real전투
- 1809년 — Battle of Yevenes전투
- 1809년 — Battle of Radzymin전투
- 1809년 — Battle of Belchite전투
- 1809년 — Battle of Raszyn전투 · Austria ▸ France, Duchy of Warsaw
- 1809년 — Battle of Sandomierz전투 · Habsburg Empire ▸ Duchy of Warsaw
- 1810년 — Battle of Fuengirola전투
- 1810년 — Battle of Baza전투
- 1811년 — Battle of Saguntum전투
- 1811–1812년 — Siege of Tarifa포위전
- 1812년 — Battles of Vilnius (1812)전투
- 1812년 — Battle of Powiewiórka전투
- 1812년 — Battle of Gorodeczno전투 · France, Austria ▸ Russia
- 1813년 — Siege of Toruń포위전
- 1813년 — Battle of Kalisch전투 · Russia ▸ Sax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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